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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AH STORY 005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토요일 오후, 지현은 혼자 강변을 걸었다.

밤에 수건을 든 여성이 식탁 위 휴대폰을 바라보는 모습

토요일 오후, 지현은 혼자 강변을 걸었다.

벤치마다 두세 사람씩 앉아 있었다. 지현은 빈자리를 찾다가 그냥 지나쳤다. 집에 돌아가기에는 날씨가 아까웠다.

강물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날씨가 좋아서 조금 걸었습니다.’

저녁에 오래된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나도 걷고 싶다, 요즘 너무 정신없다. 지현은 웃는 얼굴을 눌렀다.

며칠 뒤 모르는 사람에게서 친구 요청이 왔다. 메시지도 함께였다.

‘사진 보고 연락드렸어요. 저도 예전에 그 길을 자주 걸었거든요.’

해외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 지현은 그의 계정을 살펴보았다. 일하는 모습과 여행 사진이 있었다. 친구 요청을 받아주고 짧게 답했다.

‘걷기 좋더라고요.’

다음 토요일에 그가 다시 물었다.

‘오늘도 강변에 나갔어요?’

지현은 창밖을 보았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못 갔어요.’

‘그럼 집에서 뭐 해요?’

그 질문을 받고 지현은 잠깐 웃었다.

누군가에게 설명할 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하루였다.


대화는 조금씩 길어졌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 저녁에 먹은 것, 허리가 아파서 걷지 못한 이야기를 했다. 며칠 뒤 그가 허리는 좀 나았느냐고 물었다.

지현은 그때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대화창을 올려보았다.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퇴근길에 버스를 놓쳤다고 했더니, 집에 들어갔느냐는 메시지가 왔다. 지현은 현관에서 신발도 벗지 않고 답장을 보냈다.

‘방금 왔어요.’

그제야 가방을 내려놓았다.

오래된 친구와는 예전에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다. 퇴근하다 지현의 구두 굽이 빠졌을 때, 친구가 옆에서 같이 절뚝거리며 걸어준 적도 있었다. 둘은 편의점에서 슬리퍼를 사 신고 한참 웃었다.

지금은 직장도 사는 곳도 달랐다.

지현이 메시지를 보내면 친구는 밤늦게 답하거나 다음 날 답했다. 만나자는 말은 날짜를 정하기 전에 흐지부지되곤 했다.

한번은 통화하다 친구가 말했다.

“잠깐만. 애가 뭘 쏟았네.”

뒤에서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지현은 괜찮다고 했다. 나중에 통화하자고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그 사람은 지현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오늘은 말이 별로 없네요.’

지현은 한참 이야기했다.

그는 지현이 말을 마칠 때까지 답을 보내왔다.

연락한 지 반년쯤 되었을 때, 돌아오면 함께 강변을 걷고 싶다고 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곳을 지현과 걷고 싶다고.

지현은 혼자 산책하다가도 벤치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처음 돈을 부탁받았을 때는 사정이 급해 보였다.

현지에서 문제가 생겨 잠깐만 도와달라고 했다. 바로 갚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지현이 망설이자 그는 더 부탁하지 않겠다며 미안해했다.

그런데 지현이 저녁을 먹었는지는 다시 물었다.

지현은 돈을 보냈다.

그동안 내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인데, 어려울 때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얼마 뒤 조금 더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일을 끝내야 한국에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지현은 적금을 하나 해지했다.

송금한 뒤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번 달엔 얼굴 좀 보자. 언제 괜찮아?’

지현은 다음 달에 보자고 답했다. 만나면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 사람 이야기를 꺼내면 사진을 보자고 하고, 왜 아직 만나지 못했느냐고 할 것 같았다.

만나고 나서 말해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귀국 날짜는 미뤄졌다. 돈을 갚겠다는 날짜도 지나갔다.

지현은 영상통화를 하자고 했다.

그는 지금 처지가 어떤지 말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당신까지 나를 못 믿으면 나는 누구한테 기대요?’

지현은 화면을 오래 보았다.

다음 날 아침 먼저 미안하다고 보냈다.

잠시 뒤 평소처럼 안부가 왔다.

지현은 그제야 출근 준비를 했다.


사기라는 사실을 확인한 날, 지현은 상담실에서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낸 사진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지현이 보여준 대화와 송금 기록을 살펴본 상담자는 더 보내지 말라고 했다.

지현은 알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처음 허리가 어떠냐고 물었던 메시지를 찾아 읽었다.

그날은 친구에게도 허리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별일도 아닌데 걱정을 끼칠 것 같아서였다.

그는 물어봐 주었다.

지현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돈은 더 보내지 않으면 됐다. 무슨 말을 하는지 지켜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조심해서 대화만 하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아홉 시가 지났다.

열 시가 되어도 안부는 오지 않았다.

지현은 한 줄을 썼다.

‘오늘은 많이 바빴어요?’

보내고 나서 눈을 감았다.

얼마 뒤 휴대폰이 울렸다.

‘힘든 하루였어요. 당신 생각하면서 버텼어요.’

지현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길게 내쉬었다.

곧이어 돈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만 도와주면 다 끝난다고 했다. 한국에 가서 만나면 얼마나 힘들었는지 설명하겠다고 했다.

지현은 답장을 썼다.

‘돈은 더 못 보내요.’

상대는 바로 읽었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지현은 컵을 씻고, 수건을 개고, 내일 입을 옷을 꺼냈다. 식탁 앞을 지날 때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답장이 왔다.

‘결국 당신도 내가 힘들 때 등을 돌리는군요.’

지현은 급히 글자를 눌렀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 뒤에 무슨 말을 붙여야 할지 몰랐다.

돈은 보내지 않겠지만 당신을 버린 것은 아니라고, 자신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싶었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지현은 화면 위에 뜬 이름을 보다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곧 메시지가 왔다.

‘잠들었나? 그냥 목소리 들으려고 했어. 내일 연락해.’

지현은 다시 대화창으로 돌아갔다.

쓰던 문장은 그대로 있었다.

그 아래에서 상대가 물었다.

‘그래서 도와줄 수 있다는 거예요?’

지현은 손을 멈췄다.

자신이 그토록 급하게 설명하려던 말에는 답이 없었다.

‘그런 게 아니에요.’

지현은 그 문장을 지웠다.

그래도 대화창을 닫지는 못했다.


다음 날 저녁, 지현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번 울리고 연결되었다.

“어제 전화했더라.”

“응. 별일 없나 해서.”

지현은 괜찮다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친구 쪽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나 지금 집에 왔어. 너는?”

“나도.”

잠깐 조용했다.

“나 돈을 좀 잃었어.”

친구가 되물었다.

지현은 모르는 사람과 연락하게 된 일부터 말했다. 해외에서 일한다고 했고, 돌아오면 만나기로 했고, 돈을 보냈다고 했다.

“아니, 만나지도 않았는데…….”

친구가 말을 멈췄다.

지현은 휴대폰을 귀에서 조금 떼었다.

“미안. 계속 말해.”

지현은 다시 귀에 댔다.

“사기인 건 확인했어.”

“그래서 지금은?”

지현은 식탁 모서리를 손톱으로 긁었다.

“어제 내가 먼저 연락했어.”

친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나도…….”

지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친구 쪽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친구가 잠깐만, 하고 대답했다.

지현은 말했다.

“바쁘면 나중에 해도 돼.”

“아니. 나 방에 들어왔어.”

문이 닫혔다.

지현은 손톱을 식탁에서 떼었다.

“돈은 더 안 보내려고 했어. 그냥 이야기만 하면 될 줄 알았어.”

목이 자꾸 잠겼다.

“아무 말도 안 오니까, 내가 먼저 물어봤어. 오늘 바빴냐고.”

친구는 듣고 있었다.

“아직도 연락이 오면 좋아.”

지현은 빈방을 둘러보았다.

“너한테도 말 못 하겠더라.”

“왜?”

“말하고 나면, 네가 나를 예전처럼 못 볼까 봐.”

친구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혼자 있었어?”

지현은 대답하려다가 울었다.

친구는 기다렸다. 가끔 지현의 이름을 불렀다.

탁자 위에서 새 메시지가 떴다.

지현은 읽지 않고 말했다.

“지금 또 왔어.”

“응.”

“나 혼자서는 자꾸 답하게 돼.”

지현은 화면에서 눈을 떼었다.

“잠깐만 더 통화해도 돼?”

“응. 전화 안 끊을게.”

새 메시지가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통화를 마치면 다시 읽고 싶어질 것 같았다.

지현은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을 조금 열었다. 밖에서 버스가 멈췄다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가 물었다.

“지현아, 듣고 있어?”

지현은 대답했다.

“응.”

그러고는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오늘 어땠어?”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마음에 걸리는 것을 묻지 못하거나 ‘아니요’라고 말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나요?

누군가의 관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동안, 내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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