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AH STORY 002
다음 차례
떨어진 날, 유진은 누군가의 면접을 도와주기로 한 약속 앞에 섰다.

유진은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이메일을 열었다.
‘이번 채용에서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달에는 지원한 자리가 없어졌고, 그전에는 마지막 면접에서 떨어졌다. 이번에는 면접을 마치며 다음 주에 연락하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유진은 그 말을 붙잡고 며칠을 보냈다.
카톡이 울렸다.
‘오늘 연습 자료 보내 주시는 거죠? 내일 면접이라 먼저 읽어 보려고요.’
목요일마다 모이는 취업 준비 모임에 새로 온 멤버였다. 모임에서는 서로 면접관이 되어 답변을 듣고, 빠진 부분을 짚어 주었다. 유진은 그의 지원 공고에 맞춰 예상 질문 여덟 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점심시간에 문서를 끝내 놓았으니 공유 버튼만 누르면 됐다.
유진은 답을 쓰지 않고 교통카드를 찍었다.
삐익. 잔액 부족.
뒤에 선 사람이 한 걸음 가까워졌다. 유진은 다른 카드를 꺼내 다시 찍고 개찰구를 통과했다.
주민센터의 작은 회의실에는 의자가 네 개 놓여 있었다. 늘 연습을 이끌던 리더가 화이트보드에 ‘질문을 끝까지 듣기’라고 적고 있었다. 지난주 유진이 답을 더듬을 때도 그는 말을 대신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오늘은 유진 씨부터 해볼까요?”
“전 오늘 쉴게요.”
유진은 가방을 내려놓았다. 새로 온 멤버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
“죄송한데, 오늘 자료는 아직 안 올라온 거죠? 제가 못 찾는 건가 해서요.”
“오늘 바빠서 못 했어요.”
그는 잠깐 유진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괜찮아요. 제가 다른 질문 찾아볼게요.”
내일이 면접이었다. 유진은 가방 속 휴대전화를 꺼냈다. 완성된 문서가 그대로 있었다. 공유 버튼을 눌렀다가, 보내기 직전에 화면을 껐다.
어차피 나는 내일도 그 면접에 갈 수 없다.
떨어질 때는 각자의 일인데, 필요할 때만 서로를 찾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을 들여 만든 질문들이 갑자기 쓸모없어 보였다.
리더가 화이트보드에 질문 하나를 적었다.
“그럼 이걸로 시작해볼까요?”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펜을 내려놓고 물을 마셨지만, 다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잠깐만요. 저도 오늘 결과가 나왔어요.”
유진이 고개를 들었다.
“안 됐어요. 지금은 면접관 역할을 하기가 좀 어렵네요.”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새 멤버는 열려 있던 채용 공고를 닫았다.
“많이 힘드신가 봐요.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면접 내일이라면서요.”
“네. 집에 가서 혼자 해보죠.”
그는 가방을 챙겼다. 유진은 휴대전화를 다시 켰다. 질문 여덟 개가 화면에 떴다.
지난주 자신이 말을 더듬을 때 기다려 주던 사람도 오늘 탈락 통보를 받았다. 유진은 그가 내어 준 시간을 모임에 오면 당연히 받는 것으로 여겼다. 이제 그는 밖에서 혼자 숨을 고르고 있었다. 눈앞의 사람도 연습 한 번 못 한 채 돌아가려 했다.
“잠깐만요.”
유진이 말했다.
“자료 만들었어요. 아까 못 했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저도 오늘 떨어졌어요. 그래서 보내기 싫었어요. 미안해요.”
그는 가방 끈을 쥔 채 서 있었다. 유진은 링크를 보냈다. 질문 여덟 개가 그의 휴대전화에 나타났다.
“지금 해볼 수 있을까요?”
유진이 시계를 보았다. 회의실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십칠 분 남았다.
“네. 제가 들어볼게요.”
유진은 의자를 돌려 앉아 첫 질문을 읽었다.
“처음 오는 고객이 화를 내면 어떻게 응대하겠습니까?”
그는 준비한 답을 말하다가 중간에 멈췄다. 유진은 말을 보태지 않았다. 그가 끝까지 답한 뒤에야 물었다.
“고객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는 들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해결됐나요?”
그는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바꾼 방법과 고객의 반응까지 차례로 말했다.
“아, 그 얘기를 해야 하는군요.”
“네. 방금 답이 훨씬 좋아요.”
그가 웃었다. 유진도 따라 웃고 다음 질문을 펼쳤다.
일곱 시가 되어 두 사람은 화이트보드를 지우고 회의실을 나왔다. 질문 네 개가 남아 있었다.
건물 앞에서 그가 물었다.
“나머지는 혼자 연습해볼게요.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유진은 집까지 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만 여기서 더 해봐요.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답변을 음성으로 보내 줘요. 들어볼게요.”
그는 휴대전화에서 다음 질문을 열었다. 유진은 계단 옆에 서서 그의 말을 들었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탈락 메일은 여전히 읽은 편지함 맨 위에 있었다. 유진은 화면을 닫고, 내일 아침 쓸 이어폰을 가방 앞주머니에 넣었다.
Selah — 잠시 머물러 보기
유진의 탈락 메일은 그대로였지만, 내일 들어 줄 누군가의 답변이 생겼습니다.
나는 요즘 무엇을 잃었다는 생각에 붙잡혀 있나요?
그동안 내게 건네진 도움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