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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AH STORY 004

다음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도와주고 싶었다. 조금만 더 애쓰면, 아이도 자신 있게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다.

전자피아노 앞 아이와 접은 빨래를 든 엄마가 서로 바라보는 모습

아이가 처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미정은 악기부터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는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식탁 위에 손가락으로 쳤다. 오른손이 움직이면 왼손도 따라 움직였다. 소리는 없었지만 아이는 끝까지 치고 나서 혼자 웃었다.

미정은 동네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처음 몇 달은 학원에 다녀온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다. 새로 배운 것을 들려주겠다고 가방도 내려놓지 않았다. 미정은 저녁 준비를 멈추고 휴대전화에 담긴 짧은 연주를 들었다.

아이가 두 손으로 치는 것을 어려워할 때는 옆에 앉아 기다렸다.

“천천히 해도 돼.”

한 번 이어서 친 날에는 둘이 손뼉을 쳤다. 아이가 미정의 손바닥을 세게 치고 웃었다.

학원 선생님이 작은 대회에 나가보자고 했을 때, 미정은 먼저 아이에게 물었다.

“해보고 싶어?”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미정은 중고 전자피아노를 구했다. 직접 가져와야 한다는 말에 차를 빌리고, 주말 오후를 꼬박 썼다. 거실 한쪽을 비우고 악기를 놓자 아이가 의자에 앉았다.

미정은 문 옆에서 그 뒷모습을 찍었다.

연습하다 울던 날도 있었다. 아이는 틀린 곳에서 자꾸 손을 멈췄다. 미정은 물을 가져다주고 옆에 앉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아이는 잠깐 쉬더니 다시 건반에 손을 올렸다.

첫 대회에서 아이는 상을 받았다.

미정은 대회장 밖에서 아이를 안았다. 아이가 달려오다 상장을 구길까 봐 손을 높이 들고 있었다. 미정은 웃으며 그 손까지 품에 넣었다.

그날 저녁 아이는 상장을 식탁 한가운데 세워두었다.

“다음에도 나가볼까?”

미정이 물었다. 아이는 입안에 든 밥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이제 조금 더 큰 대회를 준비할 수 있겠다고 했다. 꾸준히 해온 것이 보인다고, 어머니도 애쓰셨다고 했다.

미정은 학원 시간을 늘렸다. 다른 지출을 줄이면 가능했다.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돈 때문에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준비만 잘 넘기면 아이도 자신감이 붙을 것이다. 그때는 혼자서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들이 놀이터에 모인 날, 아이가 신발을 신다가 물었다.

“오늘 연습은 갔다 와서 하면 안 돼?”

“갔다 오면 피곤해서 못 하잖아. 먼저 하고 나가.”

연습이 끝났을 때는 친구들이 집에 갈 시간이었다.

아이는 신발을 다시 벗었다.

미정도 마음이 쓰였다. 그래도 이번 대회까지는 흐트러지지 않는 편이 좋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버티면 지금의 수고가 아이에게 힘이 될 것이다.

두 번째 대회에서는 상을 받지 못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는 창밖만 봤다. 미정은 괜찮다고 말했다. 한 번 못 했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집에 와서는 다음 대회 날짜를 찾아봤다.

실수한 부분만 잡으면 됐다. 아이가 이대로 자신은 못한다고 생각하게 둘 수는 없었다.

며칠 뒤 아이가 피아노 앞에서 말했다.

“오늘은 좀 하기 싫어.”

미정은 접던 빨래를 내려놓았다.

“하기 싫은 날도 해야 느는 거야.”

“오늘만.”

“엄마도 매일 학원 데려다주는 게 편해서 하는 건 아니야.”

아이가 미정을 봤다.

미정은 곧 목소리를 낮췄다.

“네가 하고 싶다고 했잖아. 엄마는 도와주려는 거야.”

아이는 의자를 당겼다. 미정은 다시 빨래를 들었다.

다음 날부터 아이는 하기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미정이 시간을 알려주면 앉았고, 연습을 마치면 방으로 들어갔다.

마음이 잡힌 것 같았다. 미정은 더는 실랑이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대회에서 아이는 끝까지 틀리지 않았다.

미정은 객석에서 손을 꼭 모았다. 연주가 끝나고 아이가 일어서자 누구보다 크게 박수를 쳤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빵을 샀다. 결과는 며칠 뒤에 나온다고 했다.

미정은 빵 봉투를 아이에게 건넸다.

“오늘은 정말 잘했어.”

아이는 봉투를 무릎에 놓았다.

“엄마, 이번에 상 받으면…….”

“응?”

아이가 봉투 끝을 접었다 폈다.

“한동안 대회 안 나가도 돼?”

미정은 아이를 봤다.

“잘했는데 왜? 상 받으면 더 좋은 기회가 생길 수도 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빵은 꺼내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도 아이는 차에서 바로 내리지 않았다.

“못 받으면?”

“그럼 뭐가 부족했는지 보고 다시 해보면 되지.”

아이가 미정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언제 안 나가도 돼?”

미정은 시동을 끄려던 손을 멈췄다.

아이는 기다렸다. 미정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상을 받으면 다음 기회가 있었다. 못 받으면 다시 준비해야 했다. 어느 쪽에도 아이가 쉬겠다는 말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너, 피아노 하기 싫어?”

말이 조금 급하게 나왔다.

아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회는 싫어.”

“그럼 말하지 그랬어.”

아이가 미정을 봤다가 무릎으로 눈을 내렸다.

“말했잖아.”

미정은 입을 다물었다.

오늘만 쉬고 싶다는 말. 친구들과 놀고 와서 하겠다는 말.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자신은 다음에 쉬면 된다고 했다.

아이는 빵 봉투를 미정에게 내밀었다.

“엄마, 화났어?”

미정은 받지 못했다.

아이에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었던 사람이 자신이었다. 아이는 이제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고 나서, 자신이 화났는지부터 살폈다.

차 안이 조용했다.

미정은 아이를 위해 줄였던 것들이 떠올랐다. 일정을 바꾸고, 돈을 아끼고, 기다렸던 시간들. 그 수고를 떠올릴수록 서운한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엄마가 얼마나 애썼는데.

미정은 그 말을 삼켰다. 아이는 아직 봉투를 들고 있었다.

“화난 건…….”

괜찮다고 말하기에는 마음이 괜찮지 않았다.

“엄마가 좀 서운한가 봐.”

아이의 손이 내려갔다.

미정은 서둘러 덧붙이려다가 멈췄다. 서운하니 다시 해보자는 말을 붙일 것 같았다.

“그래도 네가 말한 건 들었어. 대회는 싫다고.”

아이는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집에 올라오니 피아노 위에 지난번 상장이 놓여 있었다. 미정의 휴대전화에는 다음 수업을 확인하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답장을 쓰려다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수업을 어떻게 할지, 이미 낸 참가비는 어떻게 되는지 선생님과 이야기해야 했다. 아이가 나중에 아쉬워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는 가방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미정이 불렀다.

“아까는 엄마가 말이 너무 빨랐지.”

아이가 문 앞에 섰다.

미정은 식탁 의자를 당겼다.

“더 하고 싶은 말 있어?”

아이는 피아노 쪽을 한 번 보고 다가왔다. 미정은 옆 의자에 놓인 빵 봉투를 식탁 위로 옮겼다.

아이는 앉아서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미정은 먼저 묻고 싶었다. 대회만 싫은 건지, 피아노도 그만두고 싶은 건지.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입을 열려다가 기다렸다.

아이가 빵 봉투를 열었다. 하나를 꺼내 미정 앞에 놓고, 다른 하나는 두 손으로 잡았다.

“엄마.”

“응.”

“나 아직 생각 중이야.”

미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휴대전화가 한 번 더 울렸다. 미정은 손을 뻗었다가 거두었다.

아이가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미정도 자기 앞에 놓인 빵을 들었다.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를 위해 애쓰는 동안, 그 사람의 말을 ‘나중에’로 미뤄둔 적이 있나요?

내가 들인 수고 때문에, 듣기 어려워진 말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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