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AH STORY 006
자료 더 필요하면 말해
서연은 도서관 창가 자리에 면접 자료를 펼쳤다.

서연은 도서관 창가 자리에 면접 자료를 펼쳤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몇 달째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사서로 일하는 서연이 도울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출판사에서 요즘 나온 책들이야. 네가 읽은 것도 있더라.”
지호는 목록을 보다가 웃었다.
“이거, 우리 둘 다 끝까지 못 읽은 책이잖아.”
서연도 웃었다. 둘은 마지막으로 읽은 부분이 어디였는지 한참 이야기했다.
“그런데 네가 맡았던 어린이 행사는 어땠어?”
끝나고도 집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던 아이가 떠올랐다. 서연은 입을 열다가 자료를 다시 모았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면접 질문부터 보자.”
연습을 마쳤을 때 지호가 물었다.
“같이 저녁 먹을래?”
“오늘 연습한 거 잊기 전에 한번 더 봐. 면접 끝나면 먹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
서연은 가방 안의 자료를 내려다보았다. 다음에 만나면 보여줄 것이 아직 있었다.
합격 소식은 화요일 아침에 왔다.
서연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지호가 첫 출근 날짜를 말하다가 웃었다. 서연도 웃었다. 책을 반납받는 동안에도 입가에 웃음이 남았다.
입사한 뒤에는 자료를 묻는 연락이 줄었다. 대신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점심을 같이 먹는 동료가 생겼고, 퇴근길도 익숙해졌다고 했다.
“너는 요즘 어때?”
“나야 늘 똑같지. 일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지호가 전화를 끊고 나면 서연은 다음에 해줄 일을 생각했다. 출근 첫 주에는 필요한 책을 골라 보냈다. 다음 주에는 자취방에서 간단히 해 먹을 음식 목록을 보냈다.
점심시간에 동료가 같이 밥을 먹자고 했을 때도, 보내던 것을 마저 정리해야 한다며 먼저 가라고 했다.
‘고마워. 그런데 나 요즘 잘 먹어. 회사 식당도 괜찮고.’
서연은 다행이라고 답했다.
그날 밤에는 위에 부담이 적다는 음식들을 더 찾아보았다. 구직할 때 지호는 긴장하면 밥을 잘 먹지 못했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도 그냥 두기가 어려웠다.
바쁜 사람에게 만나자고만 하면 부담이 될 것 같았다. 필요한 것을 들고 가면, 만날 이유가 생겼다.
다음 주 금요일에 하루 휴가를 냈다.
아침부터 김밥을 말았다. 지호에게 줄 통을 채우고 남은 것은 자기 몫으로 담았다.
전화를 먼저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지호는 바쁘다며 괜찮다고 할 것이다. 그래도 직접 가져가면 한 끼는 제대로 먹을 수 있었다.
회사 주소는 입사했을 때 받은 메시지에 있었다.
로비에서 전화하자 지호가 내려왔다.
“서연아, 여기 웬일이야?”
“점심 가져왔어. 잠깐 같이 먹을 수 있어?”
지호는 도시락을 보다가 시계를 봤다.
“나 지금 회의 중이야.”
“그럼 이것만 가져가. 저녁에 먹어도 돼.”
“고마운데, 다음엔 먼저 물어봐 줘.”
그때 직원 한 사람이 지호를 부르며 다가왔다. 회의가 다시 시작된다고 했다.
서연은 얼른 통을 내밀었다.
“지호가 위가 안 좋아서요. 바빠도 밥은 거르지 않게 좀 챙겨주세요.”
직원은 지호를 한 번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호는 도시락을 받아 들었다.
“그 얘기는 안 해도 돼.”
서연은 웃던 입을 다물었다.
“걱정돼서 그렇지.”
지호는 더 말하지 않고 직원과 함께 돌아갔다.
서연은 로비 의자에 잠깐 앉았다. 준비할 때는 둘이 어디에서 먹을지까지 생각했었다.
집으로 돌아와 자기 몫의 김밥을 냉장고에 넣었다. 지금은 먹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메시지가 왔다.
‘도시락 고마웠어. 그런데 회사에 올 때는 먼저 물어봐 줬으면 해. 내 건강 얘기도 다른 사람한테 하지 말아 줘. 당분간 연락을 좀 쉬고 싶어.’
서연은 마지막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그럴 만큼 잘못한 걸까. 휴가까지 내고 아침부터 만든 것이었다. 힘들 때는 먼저 찾아놓고, 이제 괜찮아졌다고 이러는 건가.
‘내가 너 걱정해서 한 일인데.’
그 뒤에 취업 준비할 때 챙겨줬던 일들을 쓰려다가 멈췄다. 지호도 모르는 일이 아니었다.
전송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지난 대화를 올렸다. 그때는 자신을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다시 보고 싶었다.
면접 준비를 하던 때의 메시지가 나왔다.
‘자료 정말 고마워. 주말에 뭐 해? 같이 영화 볼래?’
바로 아래에 자신의 답이 있었다.
‘괜찮아. 자료 더 필요하면 말해.’
서연은 화면을 움직이지 않았다.
지호는 자료를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조금 앞에는 어린이 행사 사진을 보내달라는 말도 있었다. 서연은 사진이 없다며 면접 날짜를 물었다.
합격한 날의 대화도 남아 있었다.
‘오늘 저녁 시간 돼? 같이 밥 먹자.’
‘오늘은 푹 쉬어. 입사 전에 준비할 거 있으면 말하고.’
서연은 그날 통화하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함께 웃었던 것은 기억하면서, 저녁에 보자는 말은 잊고 있었다.
손가락을 화면 위에 댔다.
그때는 둘이 만날 수 있었다. 가져갈 것이 없어도.
입력창으로 돌아왔다. 쓰던 문장을 지우고 다시 적었다.
‘미안해. 갑자기 찾아가고 네 건강 얘기를 한 건 내가 잘못했어.’
뒤에 ‘그래도 우리 사이까지’라고 붙였다가 지웠다.
‘당분간 연락하지 않을게.’
서연은 그 문장을 보냈다. 곧 읽었다는 표시가 떴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소파에 내려놓았다.
내일 다시 물어보면 조금 풀리지 않을까. 목소리를 들으면 다르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연은 휴대폰 쪽으로 손을 뻗었다가 거두었다.
다음 날 점심시간, 서연은 도서관 휴게실에서 도시락을 열었다. 전날 냉장고에 넣어둔 자기 몫의 김밥이었다.
휴대폰을 켰다. 지호에게서는 새 메시지가 없었다.
점심을 잘 먹었는지 궁금했다. 안부 한마디쯤은 괜찮지 않을까.
‘점심 뭐 먹었어?’
답이 오면 오늘은 괜찮은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밥도 좀 넘어갈 것 같았다.
서연은 화면을 조금 올렸다.
‘오늘 저녁 시간 돼? 같이 밥 먹자.’
그날 지호는 무엇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다. 면접 이야기를 더 하자는 말도 없었다.
서연은 그 문장에 손가락을 잠시 얹었다.
쓰던 안부를 지웠다. 대화 기록은 남겨두었다.
휴게실 문이 열렸다. 전에 같이 점심을 먹자던 동료가 도시락을 들고 들어왔다.
서연은 휴대폰을 식탁 한쪽에 놓았다.
“여기서 같이 먹을래요?”
동료가 맞은편 의자를 당겼다.
“좋죠.”
도시락 뚜껑이 잘 열리지 않아 동료가 낑낑댔다. 서연이 손을 내밀려는데, 딸깍 하고 열렸다. 둘은 잠깐 웃었다.
서연은 자기 도시락을 가까이 당겼다.
지호의 답장은 아직 없었다. 언제 다시 연락이 올지도 알 수 없었다.
“오늘은 좀 조용하네요.”
동료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지난번 어린이 행사 때는 정신없었잖아요. 어땠어요?”
서연은 괜찮았다고 짧게 말하려다가 멈췄다.
끝나고도 집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던 아이가 떠올랐다. 지호에게도 하려다 만 이야기였다.
“아이 하나가 책을 꼭 안고 안 가겠다는 거예요.”
동료가 젓가락을 멈추고 서연을 봤다.
“집에 가면 동생이 자꾸 다음 장을 넘긴대요. 자기는 아직 읽고 있는데.”
동료가 웃었다. 서연도 아이가 책을 끌어안던 모습을 떠올리며 웃었다.
김밥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조금 눅눅해져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서연은 입안의 김밥을 삼켰다.
“잠깐만요. 그다음이 더 웃겨요.”
Selah — 잠시 머물러 보기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 애쓰는 동안, 그 사람이 내게 건넨 관심이나 초대를 지나친 적이 있나요?
내가 해줄 일이 없을 때도, 누군가가 나와 함께하고 싶어 했던 순간이 있나요?